기술이 정말 뛰어난가.
이 기술이 시장의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연구자가 아닌 창업팀으로 전환되고 있는가, 혹은 그럴 준비가 되었는가.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에서 근무한지 어느덧 7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멋진 기술을 가진 딥테크 스타트업들을 마주했고, 훌륭한 창업자 분들을 많이 만났다. 신기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한 순간들은 그런 때다. 아직 연구, 기술에 불과했던 팀들을 우리 회사에서 발굴해 투자했는데 ‘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들을 볼 때.

우리 회사가 그런 팀들을 볼 때 가장 중요하다고 대외적으로 말하는 몇 가지 기준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시장 적합도(Technology-Market Fit)’이다. 흔히 쓰는 PMF(Product-Market Fit)의 딥테크 액셀러레이터 버전이랄까.
기술-시장 적합도는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지를 보는 개념이 아니다. 그 기술이 실제 시장의 어떤 문제와 연결되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제품과 사업의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는 관점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딥테크 스타트업에게는 이 질문이 더 어렵다. 기술의 성능이 시장의 수요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시장이 아직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연구 단계에서의 의미있는 성과가 사업 단계의 경쟁력으로 곧바로 번역되지도 않는다. 연구자가 창업자의 정체성을 갖는 것도 다른 일이다.
이런 생각이 늘 백그라운드에 깔려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했다. Research Policy에 실린 “Timing is key: Navigating venture capital funding for science-based startups‘. 제목 그대로 과학 기반(연구 기반-이라고 해석하는 게 덜 어색한 것 같다) 스타트업이 VC 투자를 받는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 지식의 프론티어에 가까운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 생태계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VC 투자를 제때 받는게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Research Policy 라니! 과학기술정책 석사과정때부터 정책연구원에서, 그리고 기술경영학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이 읽었던 학술지다. 혁신연구, 기술경영, 과학기술정책분야를 아우른다. 그러니까 이 연구는 ‘딥테크 스타트업이 왜 자받기 어려울까’라는 업계의 실무적일 수 있는 질문을 투자 의사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이 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혁신 시스템의 병목으로 다룬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단순히 VC가 과학기술을 몰라서, 혹은 이 문법에 맞는 IR을 잘 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내용은 직관적이다. 연구자 창업팀은 기술을 더 완성하고 싶어 한다.더 좋은 실험, 더 정교한 모델, 더 훌륭한 논문과 특허.하지만 모험자본은 시장 검증을 원한다. 고객이 있나. 이 문제를 돈 내고 해결하려는 수요가 있나. 이 기술이 실제 제품과 비즈니스로 전환될 수 있나.
논문에서는 이를 ‘시장실험(market experiment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술이 시장에서 작동하는지, 고객이 반응하는지, PMF를 찾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문제는 Science-based 스타트업일수록 이 실험이 비싸고 어려운데, 창업팀의 우선순위가 시장 실험보다 추가 연구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과학에 기반한 기술은 더 새롭고, 더 임팩트가 크고, 더 높은 잠재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향성이 높은 스타트업은 더 빨리 투자를 받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반대 효과가 나타난다. 기술의 잠재 가치는 커지지만 그 기술이 시장 실험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신뢰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역 U자 관계(inverted U-shaped relationship)‘으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Pitchbook 데이터를 기반으로 1990년부터 2015년에 설립된 미국 기술 스타트업들을 분석했다. 여기에 특허 데이터를 결합해 스타트업의 과학적 지향성을 측정했다. (스타트업의 특허가 과학 논문을 얼마나 인용하는지, 특허 내 non-patent literature citation). 즉 ‘딥테크로 구분돼 있다’는 라벨이 아니라 해당 팀의 기술(특허)이 실제로 과학 지식(연구 논문 인용)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를 포착한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과학적 지향성이 낮은 수준에서 중간 수준으로 올라갈 때는 VC 투자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술적 차별성과 잠재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 지향성이 매우 높아지면 다시 VC 투자 가능성이 낮아진다. 기술이 너무 과학의 frontier에 가까워지면 시장 검증보다 추가 연구로 자원이 흘러갈 가능성이 커지고, 투자자가 더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역U자형 관계에서는 과학적 지향성이 가장 높은 과학 기반 스타트업이 VC 자금 확보에 지연을 겪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지점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딥테크 투자에서 중요한 것이 ‘기술성이 높을수록 좋다’가 아니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이다. 기술성은 분명 중요하지만 효과가 선형적이지 않다. 기술이 깊어질수록 투자 가능성이 계속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떨어진다. 또 기술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가 늦어졌다는 설명을 통제하기 위해서 첫 특허 이후 VC 투자까지 시간도 살펴봤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직관의 영역을 특허와 논문 인용 관계로 봤다는 점에서 이 연구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이러한 결과가 단순히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성과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논문은 첫 VC 투자의 시간이 늦어질수록 총 조달금액이 적고, 마지막라운드 밸류에이션이 낮으며, 성공적 exit의 가능성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 분기 늦어질 때 마지막 라운드 밸류에이션이 10% 낮고, 총 조달금액은 6.5% 낮은 것과 연결된다고 분석한다. (인과관계보다는 상관관계라고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시선을 다시 현업으로 가져와보면 시사점이 더 많다. 딥테크 초기 투자에서의 중요한 과제는, 단순히 더 많은 기술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과 시장 사이의 번역구조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기술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바꾸고, 논문과 특허의 성과를 고객이 가진 문제와 구매 의사결정의 언어로 바꾸는 일. 그 과정에서 창업팀이 어떤 시장 실험을 먼저 해야하는지, 어떤 증거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일.
한국에는 뛰어난 연구 인력과 기술 자산이 많다. 정부의 지원도 많다. 이 연구가 Research Policy에 실렸다는 점은 생각해보면 저자들의 말하는 문제가 단순히 ‘투자자들이 이러한 타이밍을 알고 딥테크에 투자해야 한다’거나 ‘연구 기반 스타트업들이 투자 받으려면 타이밍을 잘 맞추어 준비해야한다’는 아닐 것이다. 과학 기반의 혁신이 시장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자본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할 것인지, 이를 위해 정책은 어떤 레버리지를 제공할 것인지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좋은 기술은 분명 좋은 출발점이다. 하지만 투자가 일어나는 순간은 기술의 깊이가 확인되는 순간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딥테크 투자의 병목은 어쩌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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