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driven VC의 시대, 네트워크 장벽의 균열 (M Crumling, 2024)

VC의 Data-driven 접근법은 기존 네트워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존 네트워크가 보지 못하던 영역까지 탐색 반경을 넓힌다.

그리고 그 효과는, ‘더 많은 딜’보다 ‘어디서 딜을 찾는가’에서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AI가 이렇게 발전하기 전부터 VC 산업에서 Data-driven 접근을 하는 사례를 관심 있게 추적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걸 새삼스럽게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제는 오히려 ‘VC 투자에서 데이터 기반 접근을 하고 있는가’보다 ‘누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더 깊게 알아보고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러던 와중 흥미로운 연구를 발견했다. ‘Breaking Network Barriers in the Era of Data-Driven Venture Capitalists(M Crumling, 2024)’이라는 논문이다. 데이터 기술이 투자 대상 선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앞서, VC 산업 내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는 데이터 기술의 역할을 분석한 연구다.

VC 산업을 선택한 것도 흥미롭다. ‘벤처캐피탈이 실적이 제한적인(지표로 보기 어려운)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따라서 투자 기회를 찾는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성과 탐색 비용, 즉 search friction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미국의 VC 산업은 지리적으로도 매우 집중돼 있다. 논문은 미국 VC 활동의 2/3 이상이 캘리포니아, 메사추세츠, 뉴욕 등 세 개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 또 업계에서도 뚜렷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가장) 좋은 딜은 아는 사람을 통해 온다.

둘째, 네트워크가 좋은 VC(초기 투자일 경우 브랜딩이 좋은 VC/AC)일수록, 더 좋은 정보와 창업자가 몰리므로 더 좋은 투자 기회를 얻는다(‘신뢰할 수 있는 공동 투자자들과의 관계는 정보 비대칭이 큰 벤처투자에서 중요한 필터로 작용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 결과 자본은 특정 네트워크(학력, 경력, 지역 등) 주변으로 집중된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VC 산업이 작동해온 자연스러운 방식이기도 하다. (초기)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크다. 당연하게도 투자자는 신뢰할 수 있는(직접 알거나, 아는 사람이 소개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공동 투자자,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과의 관계, 동문 네트워크, 산업 내 평판 등으로 그 정보를 보완한다.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는 사실 단순한 ‘인맥’ 이 아니라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네트워크가 일종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네트워크 안에 들어온 팀은 더 빨리 발견되고, 더 자주 검토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된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팀이라면? 어쩌면 끝내 발견되지도 않을 수 있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에 있다. Data-driven VC가 이러한 네트워크 중심의 VC 산업의 문화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고자 한 것.

연구에서는 VC가 데이터 기반 업무 방식을 채택했는지 여부를 데이터사이언티스트, 또는 관련 인력을 채용했는지로 측정했다. 단순히 ‘우리도 AI 쓴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실제 내부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할 인력을 보유했는지를 본 것이다. 그리고 해당 VC가 데이터 기술을 도입하기 전과 후에 투자 행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했다.

(M Crumling, 2024)

결과는 꽤 선명했다.

데이터 기술을 도입한 VC가 전통적인 VC허브(캘리, 뉴욕, 메사추세츠) 지역 외에 연간 약 15% 더 많이 투자했다. 특히 기존 VC활동이 낮았던 지역에서 그 증가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즉 데이터 기술을 도입한 VC는 단순히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네트워크나 지리적 집중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혹은 안) 보였던 지역의 스타트업을 더 발견하게 됐다는 뜻이다.

또 데이터 기술을 도입한 VC는 기존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던 산업 외의 분야에도 더 많이(약 40%) 투자하게 됐다. 다른 지역에 투자할 때, 현지 VC와 함께 공동 투자하는 비율도 낮아졌다. 이는 데이터 기술이 지리적 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산업 네트워크, 투자자 네트워크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이들의 성과다. 데이터 기반 VC의 비허브 지역 투자가 후속투자 받을 가능성은 낮을 수 있지만, IPO나 유니콘을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초기 투자의 성과는 평균값보다 right-tail outcome에 의해 결정된다고들 한다. 대부분이 실패하더라도, 소수의 홈런 투자가 성과를 좌우한다고들 하기에.

그래서 Data-driven VC는 기존 네트워크가 놓쳤을 가능성이 있는 아웃라이어 발견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평균적으로 괜찮은 회사를 더 잘고르는 도구라기보다 ‘기존 네트워크 밖의 홈런 후보’를 찾는 도구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이 연구는 또 한 가지,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AI 심사역’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많은 논의는 ‘AI가 심사역을 대체할 수 있는가’로 흘러간다. AI가 deck을 읽고, 시장 규모와 성장을 예측하고, 투자 심사 의견을 작성하고, 투자 여부를 추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할 것이다(그 와중에도 펀드레이징과 회수는 인간의 영역…). 하지만 이 연구를 읽고 나면 더 중요한 질문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오히려, “AI가 심사역을 대체할 수 있는가?”보다 먼저 물어야할 것은, “AI와 데이터 기술이 심사역이 볼 수 있는 시장의 범위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는가?” 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이 업은 여전히, 앞으로도 ‘사람을 보는’ 일일 것이다. 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업자 개인의 집요함, Grit, 팀의 케미, 타이밍, 고객의 미묘한 반응. 그런 것들은 숫자로 단순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지역과 산업의 변화를 먼저 감지할 것인지, 투자 기회를 얼마나 확장할 수 있을지에는 데이터 기술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읽고 다시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로 시선을 돌려본다. 한국은 미국보다 지리적으로는 (훨씬) 작지만, 투자 네트워크의 집중도가 결코 낮지 않다. 서울 중심의 창업 생태계, 판교의 IT 산업계, 대전 중심의 연구 인력 밀집. 이로 인해 생성된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통해 딜이 흐르는 구조가 분명 존재한다.

딥테크 영역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특히 초기에는 더 그렇다. 좋은 팀이 좋은 IR deck을 가지고 있거나, 온라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지역 대학, 연구소, 제조 현장, 병원, 실험실, 특정 산업의 밸류체인에서 조용히 만들어지는 창업팀들은 기존 네트워크만으로는 충분히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데이터에도 한계가 있다.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흔적이 있는 회사를 찾게 마련이기에, 법인화되지 않은 팀, 온라인 존재감이 낮은 연구실 창업, 폐쇄적인 산업 현장에서 출발하는 창업팀은 여전히 데이터 밖에 존재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가 특정 기업의 프로필과 과거 성공 사례의 패턴을 학습할 수록 기존 성공사례와 유사한 팀을 더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Data-driven VC는 어쩌면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데이터를 볼 것인지, 어떤 신호를 중요한 것으로 정의할 것인지, 어떤 편향을 줄이고 어떤 가능성을 더 넓게 볼 것인지의 문제다. 결국 데이터 기반 접근법에도 가장 중요한 건 투자자의, 그 하우스의 관점과 철학일 것이다.

이 연구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Data-driven VC를 과장하거나 찬양하지 않으면서도 산업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서다. 네트워크는 여전히 모험자본의 중요한 자산이다. 좀 더 세게 말하면, VC가 네트워크 비즈니스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의 네트워크에는 사람 간의 연결만이 아니라,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 발견 가능성까지 포함하게 될지도 모른다.

데이터는 네트워크를 대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벽에는 분명, 균열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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